[책 리뷰] 한 컷의 인문학 - 권기복.웨일북.2020.
깊은 사유가 어려운 당신을 위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지식의 그림을 심어준다!
인문학의 필요성이 강조된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삶에 유용하며 필수라고까지 하는
인문학의 수혜를 가장 크게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한 컷의 인문학』의 권기복 작가는
‘비직관형’ 인간이라고 말한다. 직관적이지 못하고 의심이 많아 판단과 행동이 느린 인간은
슬럼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유형의 인간에게 인문학은 ‘이론’이라는
동아줄을 내려줄 수 있다.
스스로를 ‘생활인문인’이라고 표현하는 권기복 작가는 지독한 슬럼프 속에서
인문학을 읽고 그리면서 삶에 기둥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자 수시로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에 인문학적 이론들을 대입하며 문제를 극복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관점’도 생겼다.
지성은 다름 아니라 관점의 축적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작가는 자신의 관점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복잡한 인문학 이론을 생활의 컷으로 구현해냈다.
글로만 보면 딱딱하고 복잡하게 보이는 인문학이 그림으로 부드럽게 요약되며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그렇게 거대한 주제의 단면들을 그림으로 한 컷 한 컷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의 지도가 만들어진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인문학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새기게 된다.
-책 소개: Yes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4515691?OzSrank=1)
[목차정리]
- 지금 이 시대에 사랑의 가치는?
- 돈이 삶에 미치는 영향.
- 개인이 속한 사회에서의 크기.
-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 공화주의. 공공이란?
인문학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네이버 국어사전의 사전적 의미이다.
아마도 재미없으며 고루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돈이 되는 것도 아닌
이 학문이 필요한 이유는
나를 지키는 자존감을 위한 양분이 아닐까 싶다.
생각의 틀을 만들어가며
나에서 시작해 사회까지 넓어지는
고민과 사색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나로 살게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흥미로운 주제들을
여러 말과 글을 빌어 작가가 정리하여 설명한다.
이해하지 못할만큼 깊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어떤 방향인지 인지는 하게 하는 듯하다.
한 페이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빽빽하게 그려진 삽화들은
자칫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다.
최근 머리 아픈 주제인
공공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위한
대의민주주의 투표의 결과도
이 책을 읽음으로 한 번 더 곱씹게 된다.
[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진정한 공동체란 나에게 공적 행위를 기대하는 사회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스스로 '나의 말과 행위에 사회의 명운이 달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자의식 과잉이나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공화주의가 제공하는 사회적 상상이며,
시민을 위한 최고의 정치적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 277pg]
이러한 사회적 상상을
대한민국에서 보고 듣고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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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발췌.
27pg
그렇다면 이렇게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시대에 어째서 현대인은 매 순간 불안을 느끼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설명이 가능할 뿐이지 예측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만 설명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35p
울리히 벡은 현대의 개인화를 소비자 의식’과 ‘자기 확신'의 혼합물이라 정의했다. 자기 확신이란 삶의 불확실성을 개인의 소신대로 뚫고 나가고, 비일관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유쾌한냉소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장애물을 만나면 유연하게 피해가는 것이 현대의 능력 있는 인간상 아니겠습니까?]
59p
즉, 사랑이란 곧 나와 파트너의 영혼을 함께 돌보며 불완전한 개인에서 완전한 전체로 거듭나는 플라톤적 에로스를 실천하는 일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전체란 개인이 지워지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성숙한 사랑은 한 사람의 개성이 온전히 보전된 채, 분리와 고립이 극복되면서 그 특성은 온전히 유지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롱
130p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증여론》에서 북아메리카 원시 부족들이 축제 때 타 부족과 경쟁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인 '포틀라치 polich'를 설명하며 진정한 부의 가지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여기에서 교환되는 것은 단순한 재화가 아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예의 그리고 기쁨이다.
161p
교회가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게 아니고, 과학적 사실 안에 가치가 내재해 있는 것도 아니라면 인간은 어디서 인생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바로 경험과 이성을 토대로 한 개인의 결단, 즉 인간의 의지였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살지 양심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며, 그 책임 또한 오롯이 내가 진다.]
252p
이 두 개념은 합성명사로 헌법에 적힐 만큼 친한 사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견제 관계일 때 더 빛을 발한다. 권력의 공평함을 강조하는 '공화'가 상대적으로 다수를 중시하는 '민주'를 견제하지 않으면 민주는 다수결이라는 원리를 방패 삼아 소수를 억압할 수 있기때문이다.
268p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공화주의가 원활히 작동할 때 피렌체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즉,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공적 공간으로 모조리 끄집어내어 법과 토론으로 해소하고, 갈등이 긴장과 발전 그리고 상승작용으로 이어지도록 시민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종족적 공동체가 아닌 시민 의식을 기반으로 한 자유 공동체를 꿈꿨다.
277
전체주의가 바로 이러한 인간성 상실을 토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아렌트의 분석이다. 만약 서로 얼굴을 대면하는 공적 영역이 활성화되었다면 유대인을 차별하고 무참히 학살하는 끔찍한 일이 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통과될 수 있었을까? 나와 남을 함께 생각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체주의가 감히 발붙이지 못할 만한 공동체란 무엇을 의미할까? 아렌트가 말하는 진정한 공동체란 나에게 공적 행위를 기대하는 사회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스스로 '나의 말과 행위에 사회의 명운이 달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자의식 과잉이나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공화주의가 제공하는 사회적 상상이며, 시민을 위한 최고의 정치적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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