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정유정,지승호.은행나무.2018
[책 리뷰]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정유정,지승호.은행나무.2018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독자와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정유정이 소설 쓰기에 관한,
이른바 ‘영업비밀’을 털어놓았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소설가 정유정의 인터뷰집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정유정의 삶과 소설 쓰기의 방법론이 심도 있게 제시된다.
기존의 서사 이론을 재해석하며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의 소설들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다.
등단 과정의 고단함과 작가론도 있지만 ‘이야기를 쓰는 법’이 이 책의 주를 이룬다.
한 작가의 세계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징검돌을 놓는 지승호의 예리한 질문에,
정유정은 흥미로운 입담에 이야기하기의 욕망에 대한 성찰을 녹여 답한다.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아니라 ‘체험하게 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분투하는지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책 소개: Yes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61557655?OzSrank=1)
[목차정리]
- 나는 어떻게
- 이야기를 생각하고
- 인물을 만들며
-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가.
정유정 작가의 소설쓰기에 관한 인터뷰집.
읽다보면 왜 본인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스스로 쓰지 않았는지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자연스럽게 인터뷰어와의 질문을 통해
본인의 가치관과 생각, 방법론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어디까지가 인터뷰의 질문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정돈된 답변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안의 내용들을 질문과 답변의 흐름이
잘 정돈된 책이라 읽기 편하다.
가능하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책을 한편이라도 읽는다면 좀 더 도움이 될 듯 하다.
비슷한 비중으로 작가가 작품을 쓸때 준비하는 과정과 함께
기존 작품에 어떻게 적용하였는지 쓰여있다.
일단 작가의 기존작품이 가진 고유한 특성상
이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했었던 점이 많았다.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꽤 많이 이해하게 됐다.
역시. 글쓰는건 쉬운게 아니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책이다.
"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한다.
그래야 그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선 파리 한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라는 강박적인 작가의 말이 작가의 작품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집착에 가까운 본인의 철학위에 쓰여지는 작가의 작품은
집을 짓는 건축가 처럼 철저한 준비와 노력끝에 이룬 잘 지어진 집이라 생각한다.
한 작품을 쓰기위해 지반 공사부터 긁적인 기초 공사와
주춧돌부터 기둥등 적절한 자재 수급.
완성하기전에 고려하는 일조량, 풍량,
그리고 조명과 콘센트까지.
작품을 위해 세계관을 창조하며 꾸미는 작가의 노력이 쉽게 보이지 않는것은
여태 지어 놓은 멋진 건축물 같은 작품들이 증명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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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p
어머니가 내게 죽음의 의미를 가르쳤다면, 그분에게선 삶의 의미를 배웠다.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고, 원하는 것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시간. 내 시간 속에서 온전히 나로 사는 시간.
39p
이야기의 대부분은 (가상적인) 누군가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즉 '나'가 아닌 타인의 문제다. 그런데도 현실 속 나의 문제처럼 강렬하게 집중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공감능력 때문이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르면 타인의 감정이나 입장에 자신이 서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타인의 상황을 자신의 일처럼 이해하고, 자신을 그 자리에 위치시켜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뇌의 거울뉴런이고 이를 통해 이성적 공감과 감성적 공감이 작동한다. 이성적 공감은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우는 이유가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하는 과정을 말한다. 감성적 공감은 나는 친구의 슬픔을 진짜 내 슬픔으로 느꼈기 때문에함께 울어주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내 친구처럼 아버지를 잃었다면어떤 심정일까, 라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감성적 공감을 생성한다. 이 메커니즘은 실제 생활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에서도 작동된다.
53p
나는 독자가 내 소설 안에서 온갖 정서적 격랑과 만나기를 원한다. 기진맥진해서 드러누워버릴 만큼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 분노, 절망, 슬픔, 비애, 사랑, 감동.…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 안에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겪는 감정경험들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키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절정까지 내달리기를 원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절정에는 이야기의 영혼, 즉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숨어 있다. “나는 세계를, 삶을, 인간을, 이렇게 바라본다"라고, 바꿔 말하면 작가는 이 메시지를 절정부에 숨겨놔야 한다. 이것은 이야기의 의미이기도 한데, 의미 자체가 재미인 경우도 있다.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형태일 것이다.
68p
작가에겐 무엇을 쓸까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쓸까'도 중요하다. '무엇'만 있고 '어떻게'가 없으면 글이 조악해진다. '무엇'은 없고, 어떻게'만 있으면 글이 허무해진다. '무엇'을 이야기로 쓰려면 이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방식도 준비되어야 한다. 말이 돼야 하는 거다. 그것도 독창적 방식으로 말이 돼야 한다.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어떻게'로 가는 첫걸음은 자신의 장르라고 짐작되는 분야의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분석하면서, 해부학을 공부하듯 하나하나 읽어야 한다. 노트를 마련하고, 장르, 구조, 플롯, 상징, 인물의 성격, 문장 등을 세세하게 기록하면서 연구해야 한다. 특히 본인에게 재미있거나 인상 깊었던 소설이라면 책장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공부하길 권한다(내 경우, 스티븐 킹의 《미저리>와 <사계>가 그랬다). 하다 보면 어떤 패턴을 볼 수 있게 된다. 이야기의 형식을 장악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102p~104p
- 등장인물은 어떤 사람들인가
개인사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사는 본격적으 등장인물은 어떤 사람들인가로 캐릭터를 만들 때 쓰는 인물의 전사(前事)'와 다르다. 그인가, 그녀인가, 아이인가. 몇 살인가? 신체적 특징은? 성격이 급한가? 행동형 인간인가? 감정기복이 심한가? 말수가 많은가? 정치 성향이 보수적인가? 직업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인물의 '카탈로그'라고도 부른다.
-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욕망에 대한 질문이다. 욕망에는 두 개의 차원이 있는데, 겉으로 드러난 욕망과 내재된 욕망이다. 겉으로 드러난 욕망은 나도 알고너도 알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다. 내재된 욕망은 숨겨진 욕망이다.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대면서 어떤 계기가 오면 불꽃으로 점화할 가능성이 있는 욕망. 주요 등장인물, 적어도 주인공에겐 병립할 수 없는 두 차원의 욕망이 존재해야 한다. 주인공이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오로지 지구를 구하겠다는 욕망 하나뿐이라면, 즉 욕망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갈등이 없다면, 플롯 표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기발하거나 한눈을 팔지 못할 만큼 다이내믹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이야기가 단조롭고 지루해질 가능성이 크다.
두 차원의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라면, 내재된 욕망이 더 중요해진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주인공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내재된 욕망일 테니까.
- 그들은 왜 그것을 원하는가
욕망의 동기에 대한 질문이다. 두 차원의 동기가 모두 필요하다.
-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성취하는가
인물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질문이다.
-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대립, 갈등, 장애물에 대한 질문이다.
- 그 결과 어떤일이 벌어지는가.
사건과 변화에 대한 질문이다.
이 여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개요를 쓴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의 순으로 간략하게 쓰고, 맨 끝에 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요약한다.
161p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이야기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작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와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를 제대로 해내려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과 자신의 이야기가 '말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그것이 리얼리즘 소설이든, SF든, 판타지든, 호러든, 스릴러든 간에.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독자를 실망시키고 화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세계의 규칙을 따라야 말이 되는 건 아니다. 현실에선 햇빛이 사람의 몸을 녹이지 못한다. 하지만 판타지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독자와 약속을 하면 되니까.
180p
...인물의 전사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탄생에서 현재까지 시시콜콜 뒤질 것까진 없다.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하다. 요는 인물의 지옥버튼을 찾는 것이다.
상처 없는 성인은 없다. 인간은 진공상태로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진공상태에서 자랐다면 몸만 성인이지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상처로 인해 자기 안에 지옥을 만들기도 한다. 그 부분의 버튼이 건드려지는 순간, 이성이 통제할 겨를 없이 폭발해버리기도 한다.
195p
앞에서 이야기는 변화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주인공의 삶을 뒤흔들고 인생경로를 바꾸어놓는 문제로 인한 변화. 그러므로 이야기의 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인공이 열도록 해야 한다. 나는 주인공이 중대한 문제와 맞닥뜨리기 직전에 시작하는 걸 선호한다. 일상이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믿는 순간, 모든 일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순간에, 예를 들어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이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면, 시작은 그날 퇴근 직전이 될 것이다. 연인에게 예상치 못했던 결별선언을 듣고 난 후부터 그 혹은 그녀의 스토커가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면, 시작은 그날 데이트 장소로 가는 장면이 될 것이다. 많은 작법서들이 사건 한복판에서 시작하라고 가르치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나는 반 박자 빨리 시작하는 편이 좋다.
196p
결말을 정하려면 먼저 주인공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사회적 욕망이든, 내적 욕망이든, 성적 욕망이든, 그것이 주인공의 인생을 뒤집어놓는 욕망이라야 한다. 그것도 원상복귀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두 번째로, 욕망을 이루지 못했을 때, 즉 목표달성에 실패했을 때 잃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야 한다. 잃는 것이 사소하다면 이야기도 사소해질가능성이 크다. 전 재산이 백만 원인 사람이 만 원을 잃는다 해서 인생이 뒤집히는 것은 아니니까.
반대로 목표를 달성한다면, 이때에도 삶이 뒤집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있었는가와는 상관없이, 둘 다 취할 수도 있다. 흔히들 아이러니 결말'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은 목표달성에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
이제 따져보고 선택하면 된다. 이야기의 진실과 작가가 전하려는 주제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가. 주인공의 실패인가, 성공인가. 아니면 아이러니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삶은 이야기가 시작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어야 한다.
208p~209p
메인플롯은 첫 페이지에서 시작된 문제를 결말로 진행시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주인공이 간단하게 포기할 수 있는 문제는 메인플롯으로 적절하지 않다. 이야기에 동력이 없으니까. 반면 서브플롯은 메인플롯과 엮이거나,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서브플롯이 메인플롯보다 더 힘이 있으면, 메인플롯의 문제를 재검토하거나 아예 둘을 바꾸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반대로 서브플롯이 메인플롯과 관계없이 독립적이면 이야기가 파편화되기 쉽다.
첨언하면,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메인플롯을 관통하는 큰 갈등이 하나 있어야 하고 서브플롯에 드러나는 각각의 갈등도 있어야 한다. 각 장마다 드러나는 갈등들이 있어야 하고, 또 장면 장면마다 드러나는 작은 갈등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갈등과 대립으로 채워야 한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더하여 순간적인 갈등은 일회용으로 소진되기 때문에 진정한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갈등이 개연성을 얻고 동력으로 작용하려면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섬세하게 설계해야 한다.
갈등도 사회적 차원의 갈등, 개인적 차원의 갈등, 자기 자신과의 갈등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설계 방식 역시 다양하다. 문제의 대립항을 만들 수도 있고, 기대를 배반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내면의 목소리와 충돌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이 모든 걸 다 사용하기도 한다.
221p
장면들을 하나로 묶는 '장도 기승전결 구조가 돼야 한다. 각 장들은 부라는 틀 안에서 기승전결을 이뤄야 하고, 부의 목표가 또렷해야 한다. 한 여자아이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죽도록 노력해 가수가 되는 이야기를 쓴다면, 세 개의 부와 목표가 필요할 것이다.
1부 목표: 부모의 반대에 저항해 가출을 한다.
2부 목표: 수십 번의 낙방 끝에 오디션에 합격해 연습생이 된다.
3부 목표: 연습생으로서의 고난을 극복하고 스타가 된다.
232p
첫째, 필요한 것만 쓴다. 필요 없는 건 쓰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최소한의 원칙'이라고 부른다....문장이 무언가를 표현하기보다 오로지 문장 자체로 빛난다면, 삭제해야 한다. 제아무리 아름답고 심오한 문장이라 해도.
둘째, 미학성보다 정확성을 우선한다. 물론 아름다우면서 정확하게 쓸 수 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지만, 누구나 그런 축복을받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238p
묘사를 하는 몇가지 팁.
묘사를 할 땐 내 눈을 카메라 렌즈 라고 상상한다. 눈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풍경 묘사(공간과 이미지 묘사도 포함된다)를 하는 거다. 첫 번째, 주인공을 중심에 두었을 때, 가장 먼 곳으로부터 가까운 곳까지 줌인하는 방식이 있다. 노을이 지는 하늘, 말라 죽어버린 회색빛 나무, 꼬리를 흔들며 나무 앞을 오가는 강아지, 주인공의 발밑으로 구르는 낙엽…… 반대로 주인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넓어지는 방식이 있다. 다음으로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시계방향으로 도는 묘사가 있다. 집 안이나 사무실 등 시야가 막혀 있는 장소를 묘사할 때 유효하다. 물론 반대방향으로 돌아도 된다. 다만, 한 장면 안에선 오락가락하면 안 된다. 방향을 잡았으면 끝까지 같은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4시 지점에서 갑자기 9시로 갔다.가 다시 1시로 돌아온다든가, 하면 피카소 그림이 된다. 전체로 보자면, 이런 방식들을 고루 활용하는 게 덜 지루하다.
두 번째로 상황 묘사가 있다. 나는 철저하게 화자의 시야에서 묘사하는 걸 선호한다. 가령, 교통사고 장면이라면, 주인공의 시야에 잡히는 사물과 충돌시의 신체적 움직임과 타격감, 느낌과 생각, 감정 등을 시간 순차로 묘사한다. 가까이에서 대화를 주고받거나, 몸싸움을 벌이거나, 누군가의 움직임을 주시할 때 행동묘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눈동자의 움직임, 숨소리, 솜털이 한 가닥씩 일어나는 것까지 섬세하게 그려내야 한다. 특히 몸싸움을 벌일 때의 묘사는 리얼리티가 중요하다. 나는 머릿속 그림을 믿지 않는다. 쓰기 전에 직접 해보는 쪽이다. 『종의 기원』의 마지막 장면은 남편을 동원해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키가 184센티인 남자가 조수석에 탔을 때, 운전하는 남자를 팔꿈치로 치고 발을 운전석으로 뻗어서 액셀을 밟을 수 있는지. 가능했다. 나는 안심하고 이 장면을 썼다.
가장 어려운 건 심리 묘사다. 우선 인간에 대한 폭넓은 공부가 필요하다. 먼저 평소 관련 책들을 공부해둬야 한다. 심리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인류학, 범죄학, 생물학, 의학, 동물학까지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진다. 인간에 대한 꼼꼼한 관찰도 필요하다.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실은 이게 더 중요하다)도 연구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는 게 좋다. 단, 정직하게 봐야 한다. 자존심, 자기애, 자의식, 방어기제 등이 방해가 될 텐데 그럴땐 자신을 타인화 시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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