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OOC]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6, 17강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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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국외의 독립운동 일본 1
1. 1910년대 일본에서의 독립운동.
▶ 재일단체 결성과 민족운동
- 도쿄의 한인단체
→ 동경의 대표적인 단체는 재일본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 (이하 기독청년회)
→ 1903년 창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 한인의 일본조직.
→ 기독청년회는 중국학생 YMCA의 결성을 배경으로 탄생.
→ 1907년 8월 건물을 세 내에 회관을 마련.
→ 이후 동경 한국인 유학생단체들의 집회장소로 역할.
- 오사카의 한인단체
→ 노동자 구호를 목적으로 하는 재대판조선인친목회 (이하 친목회)
→ 1914년 관서대학에 다니던 강만형이 발기 하여 최초 결성.
→ 1916년 5월 1일 노동자 구호단체인 동맹합자회 창립.
→ 1918년 8월 8일 조선인저금회 결성.
▶ 재일 유학생의 민족운동
-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
→ 1909년 1월 결성된 대한흥학회를 모태로 함.
→ 1912년 10월 27일 친목회를 총합하여 학우회를 창립.
→ 1925년 동경 유학생의 다수를 망라한 학우회의 성립.
→ 유학생은 학우회를 가입할 의무가 있었고, 불참시 일본의 개로 취급.
→ 민족의식과 역량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1년에 2회씩 잡지를 발간함.
→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중사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함.
→ 1920년대 중반이후에는 공산주의계의 유학생 운동단체가 전투적인
투쟁을 주도함.
- 비밀결사 열지동맹과 신아동맹당
→ 1915년 독립쟁취를 위해 싸울것을 혈서를 써서 맹세하며 열지동맹을
맺음.
→ 약소민족들의 국제적 비밀결사인 신아동맹당의 전신.
→ 이후 일본 공안당국의 감시와 검거가 강화되어 1917년 9월 30일 해산을
결의함.
2. 2.8독립선언과 3.1운동
▶ 3.1운동의 기폭제로서의 2.8독립운동
- 2.8독립운동의 배경
→ 재일한인운동사에서 독자적으로 전개된 반일운동
→ 1919년 2월 8일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
→ 파리강화회의, 러시아혁명등의 세계정세를 해석하여 조국의 독립성과
관련성을 찾음.
→ 아시의 연대를 통해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함.
→ 1910년 중반부터 일본에 망명중인 중국, 대만의 독립운동 세력과
연대활동을 전개.
→ 2.8독립운동은 학생조직인 학우회와 그 모태인 조선청년독립단에 의해
주도됨.
- 2.8 독립선언
→ 1919년 1월 6일 학우회는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개최.
→ 참가 학생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방법을 토론.
→ 조선청년독립단 조직을 창설하고 독립선언서, 결의문을 작성하기로
결의함.
→ 1월 말 송계백은 서울에 도착하여 최린, 현상윤에게 독립운동의 계획을
전달.
→ 2월 초 이광수는 상해에 도착하여 영,미,불 3개국 거두에 독립선언을
타전.
→ 1919년 2월 8일 오전 10시경 독립선언서, 결의문, 민족대회소집청원서를
각국 대사관과 공사관,
일본 국회의원, 조선총독부, 동경과 각 지역의 신문사와
잡지사, 학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
→ 동경지역 유학생 642명중 600명 참석.
→ 독립선언식을 거행하며 독립선언문, 결의문을 낭독 후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됨.
3. 1920년대 일본에서의 독립운동
▶ 민족운동의 고양
- 새로운 사상의 수용과 의열투쟁
→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 새로운 사조가 수용되고 이를 바탕으로
민족운동을 전개.
→ 3.1운동 이후 만세운동의 한계를 인식함.
→ 1921년 11월 흑도회 창립.
- 민족운동 단체의 성립과 독립운동
→ 민족운동은 의열추쟁 외에도 각종 한인단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전개됨.
→ 1925년 재일본조선총동맨의 주도아래 학우회, 신간회, 근우회,
신흥과학연구회, 일월회, 삼월회등의
한인 대중단체와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등 전위조직의 연대속에서 추진됨.
→ 일본 내에서 행해진 차별과 학살이 동력이 됨.
→ 거주 한인을 보호하고 민족적 이익을 도모함을 목적에 둠.
→ 나가타 수력발전소 건설공사장 한인 노동자 살해사건
→ 관동대지진 학살 사건.
→ 재일한인의 민족운동은 대중집회와 가두시위, 전단살포등의 사회운동.
→ 식민통치 자체를 거부하는 1927년 민족운동인 총독폭압정치반대운동
전개.
17강 국외의 독립운동 일본 2
- 1930년대 일본에서의 독립운동
→ 일제 탄압 강화와 비합법 투쟁의 전개
→ 일제의 대륙 침략 → 재일한인단체들의 합법 운동 불허 → 지하운동 형태
전개
→ 1928년 3월 프로핀테른 제4회 대회 → 조선, 타이완 노동조합 및 일본
노동조합 평의회는
재일노총과 합동의 방침을 취해야 한다. → 재일 한인의
독자적 단체 해산 → 개인적·분산적 민족운동 추진
→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거
→ 1936년 조선유학생연구회 사건, 민족부흥회 사건, 평안그룹사건 등
비밀결사운동 지속
- 일제 말기(1940년대) 반제반전운동의 강화
→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민족운동 탄압 심화한인 중심의 반제반전운동
강화 →
노동쟁의, 노동자 탈주, 무장봉기 계획 등
→ 1940년 민족주의 그룹(독립의식 고취, 신사·신궁의 존엄 모독 독려)
→ 1943년 우리독립운동그룹(조선 민중 지휘·봉기 계획, 국내 연계 추진)
→ 일제 패망 때까지 지속적인 반제반전운동 실시
→ 조선인민족주의사건, 전진회사건, 민족주의집단충성회사건,
조선학생민족주의집단사건,
조선인직공민족주의집단사건 등과 교토의
조선학생민족주의집단사건 등
- 재일 한인 민족운동의 의의
→ 한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지식층의 주도 아래 결속
→ 새로운 사조(사회주의, 아니키즘 등)을 수용하여 민족해방에 이용
→ 노동운동의 목표가 경제 투쟁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해방(독립)을 추구
- 관동대지진과 한국인 학살
→ 1923년 9월 1일 동경일대 지진 발생 → 10만여 명의 사망자와 20만여
명의 이재민 발생
→ 9월 2일 ‘조선인의 내습’이라는 명분 하에 계엄령 선포 → 조선인 학살
시작
→ 약 7500여명의 조선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 → 한인단체의 민족운동이
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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