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OOC]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4강 요약
[K-MOOC]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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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강 국외의 독립운동2 - 러시아
1. 1910년대 러시아에서의 독립운동 단체의 결성과 활동
- 권업회: 1911년 12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창립.
→ 20만명에 가까운 대규모 한인사회를 바탕.
→ 이종호, 김익용, 강택희, 엄인섭등에 의해 이루어짐.
→ 회장에 최재형, 부회장에 홍범도 선임.
→ 이후 러시아 당국의 공인을 얻어 1911년 12월 19일 공식적인 창립일로
설정함.
-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지방총회
→ 1909년 미주 지역의 국민회가 대동보국회를 흡수하여 동년 5월 10일
대한인민국회로 설립.
→ 대한인국민회는 하와이, 미주 본토, 멕시코를 비롯한 해외 한인사회의
자치기관으로 발돋움.
→ 해외 각 지역에 지방총회를 두고 그 관할에 지방회를 설립
→ 철저히 민주주의 방식에 의거.
→ 시베리아지방총회는 1911년 10월 20일 치타시쿠즈내츠느예 거리에 건립.
→ 양주륜을 초대정, 홍신영을 부회장으로 선임.
2. 러시아혁명 전후의 독립운동
- 대한광복군정부: 권업회의 건립 주도.
→ 일조 유사시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건립.
→ 연해주, 서북간도에 3개의 군구를 설치.
→ 1914년 러시아의 전시체제 확립에 따라 연해주에서 탄압을 받음.
→ 이후 북간도로 다시 옮겼으나 러시아와 일본의 연이은 탄압으로 해산됨.
- 고려족회
→ 1차세계대전 발발 이후 1917년 러시아의 2월혁명 발발.
→ 이때 러시아의 집회, 언론의 자유가 선포되며 한인 민족운동이
활성화됨.
→ 1917년 12월 연해주 한인은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족회전로한족회중앙총회를 성립.
→ 회장에 문창범, 부회장에 김주프노코, 김립 선임.
→ 주요활동으로는 언론활동을 통해 기관지 역할과 항일선전 활동.
- 대한국민의회
→ 우수리스크의 고려족회는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대한국민의회를
성립시킴.
→ 1919년 2월 조직되어 행정, 사법의 기능을 가진 통치기구로 조직.
→ 연해주와 한일상설의회를 모체로 간도와 국내까지 세력을 미침.
→ 독립운동의 중추기구로 부상됨.
- 한인사회당
→ 볼세비키혁명을 적극 지지하며 사회주의 혁명 운동이 발홍됨.
→ 민족주의 입장과 볼셰비키 이념을 지지하는 계열로 나뉨.
→ 볼셰비키를 지지하던 세력이 1918년 4월 28일 한인사회당 결성.
→ 러사아와 연대로 반일반제의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
3. 자유시참변과 한인 강제 이주
-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 통합 공산당 건설 주도 문제로 계파간의 의견이 나뉨.
→ 사회주의자들은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로 분열, 대립하게 됨.
→ 1921년 각각 이르쿠츠파와 상해 파 두개의 고려 공산당으로 분립
탄생됨.
- 자유시참변
→ 1920~21년간에 연해주와 간도의 무장부대, 독립군은 자유시
(알렉세예프스크)로 집결.
→ 자유시에 모인 한인 병력은 총 4,000명에 달함.
→ 한인 부대의 통솔권을 둘러싸고 지도부간의 대립이 벌어짐.
→ 6월 28일 고려형명군이 대한의용군이 주둔한 자유시 부군을 포위, 공격.
→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됨.
-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 자유시 참변이후 러시아 한인은 적위군편에 가담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룸.
→ 전투를 넘어 1920~30년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경제개발에 참여하며
사회에 적응하고자 함.
→ 소비에트 체제에서 소수민족으로 감시와 탄압을 받음.
→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됨.
→ 한인들을 연해주에 완전히 추방, 차단하려는 궁국적 의도.
→ 1937년 9~10월 동안에 한인 23만여 명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함.
→ 한인사회 지도자 혹은 지식인 2,500여명이 숙청되거나 처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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